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도 미키 (문단 편집) ==== [[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/피겨 스케이팅-여자 싱글|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]] ==== 시즌 초반부터 이어진 체형 변화와 부상, 빙질 문제 등으로 인해 쇼트에서 3-3 컴비네이션 점프에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.[* 당시에는 언더로테이드 판정이 없어서 회전수가 부족하면 무조건 다운그레이드로 처리되었다.] 프리에서는 총 4번(쿼드러플 살코[*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.], 트리플 룹, 트리플 플립, 트리플 토룹)을 넘어지며 최종 15위를 기록했다. 훗날 이때의 경기들은 안티들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. [[일본]] 언론은 즉각 응원에서 조롱조로 시선을 바꾸었고, 그동안의 거대한 관심은 그대로 비난이 되었다. 당시 쇼트 프로그램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로서 제작된 것이었는데 ~~그리고 [[고인드립]]급 경기를 보였다.~~ 언론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 프로그램과 [[포디움]] 실패를 연관지어 입국 직후부터 어마어마한 매스컴 취재를 가했다. '''[[일본]]의 국민성은 개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관습'''이므로 단순히 싸늘해진 정도가 아니었다. 입국 직후의 기자회견장에서 "아버지에게 헌정한 프로그램이 그 모양이었냐?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됐네" 라는 어감의 빈정거리는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자, 그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안도를 매도하기도 했다. 미키의 아버지는 미키를 링크장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. 미키는 그래서 어떡해서든, 피겨 스케이팅으로 아버지에게 보답하고픈 마음과 정신적 외상이 컸다. 이 때 [[일본]]은 [[아라카와 시즈카]]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해 여성 [[피겨 스케이팅]] 금메달 보유 목적은 달성했다. 게다가 이 금메달은 [[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]]에서 [[일본]]이 딴 유일한 메달이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카와에 대한 찬사보다는 미키에 대한 비난이나 가십이 더 많이 다루어질 정도로 당시의 비난은 혹독했다. 이런 언론에 대해 안도가 점차 움츠러들고 언론도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'미키티'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. [[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]] 전까지만 해도, 안도 미키는 차세대 스타로 주목을 받았으나, 이후로는 완전히 마오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